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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공기는 소리의 진동에도 떨리지 않았다. 부드럽고 기이한 빛이 허공에 펼쳐져 있었다. 천천히 팔꿈치로 웅크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부드럽게 긁힌 자국들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나는 뒷면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았다. 미끄러운 나무의 표면을 뒤쫓는 하얀 밤을 보았다. 

 

하얀 실로 동여맨 것처럼 안개는 도통 걷힐 생각이 없다. 문득 가장 깊은 곳은 표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믿음으로 나아갈 방법은 세계의 표면을 계속해서 세밀하게, 더 오랫동안 들여다 보는 것이다. 세계는 그렇게 부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경계에 기대어 수평선은 이어진다. 연약한 선들은 서로의 몸을 포개며 점점 분명해진다. 공백은 약간의 무게감을 갖는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 점점 커져 나의 몸을 뒤덮어가는 것, 그리운 자리를 매 만지는 호흡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불현듯 나타난다. 화면을 바라본다. 공백의 조각들이 어우러진다. 빈자리의 여운은 계속해서 덧대어져 점차 고요해진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움튼다. 그런 이유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자들은 내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송지유의 작업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에 동시적으로 참여한다. 자상함은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의 바깥이 되어 줄 것이다. 자상한 세계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또한 사라져서도 안된다는 것을 증명해줄 것이다.

송지유의 작업에 관한 신동민의 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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